영화 <우리집> (너무 길어서 나눔_2)
*상징을 살펴보자
하나의 요리 | 극 중에는 하나가 요리를 하는 장면이 여러 번 등장한다. 영화 시작부터 밥 차려놨으니 먹으라고 가족들에게 이야기하다가 엄마에게 '니가 밥을 왜 해 놓냐' 며 한 마디 듣는다. 유미와 유진이에게 오므라이스나 비빔국수를 만들어 주기도 하고, 가족 여행 가서 다같이 먹을 에그 샐러드를 만들기도 한다. 아무도 없는 집에 돌아와서는 혼자 가족들의 아침을 또 준비한다(하나 역할의 김나연 배우도 실제로 요리를 좋아해서 재미있게 했다고 한다).
하나에게 요리는 단지 맛있는 것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아닐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낸 맛있는 음식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둘러 앉아 나눠먹고 함께 대화를 나누고 교류하는 것이 하나 요리의 최종 목표가 아니었을까. 그것을 정말 같이 하고 싶었던 가족들과는 영화 속에서 한 번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데, 유미-유진이와는 그렇게 하면서 친해지고 마음을 나누게 된다. (사실 마지막에 하나가 가족들에게 밥 먹자고 할 때 가족들은 뭔 밥이냐며 어이없어 하는데, 그게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지만 그 때도 그렇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난 하나 편을 들 거다. "잔소리 그만 하고 밥 좀 같이 먹어주라고오~ 애가 영화 시작하면서부터 지금까지 같이 밥 먹자는 얘기를 저렇게 하는데 그걸 한 번을 못 해주냐?")
유미-유진이의 상자집 만들기 | 영화 포스터의 여러 버전 중 하나에 등장하기도 하는 상자집은 줄거리에서 미처 언급하지는 못했지만 영화 속에서 중요한 상징으로 계속 등장한다. 빌라 앞에 내놓은 쓰레기더미에서 상자를 찾느라 뒤적거리다가 주인 아줌마에게 혼나기도 하고, 하나와 셋이서 상자를 쌓고 붙여서 집을 만들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부모님에게 이걸 꼭 보여줘야 한다며 유진이가 계속 우겨서 이걸 짊어메고 보리 해변으로 가는데, 가는 길에 이 녀석 때문에 여행길이 점점 고행길이 된다. 힘들게 도착한 해변에는 아무 것도 없다. 당연히 이걸 봐야 할 부모님도 없다. 감정적으로 격앙된 아이들은 싸우다가 울다가 급기야는 상자집에 책임을 전가하면서 발로 차고 밟아서 부숴버린다(그래놓고 나중에는 텐트 안에 나란히 누워서 '여기가 우리 집이었으면 좋겠다'며 신나함).
유미 역의 김시아 배우는 '처음에 감독님이 상자집을 만든다고 했을 때는 원래 만들기를 좋아해서 재미있게 했는데, 하면서 유미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 상자 속에 이런저런 고민과 생각을 넣어놓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 인터뷰에서 언급했다(대배우님의 캐릭터해석 오졌다 진짜 사랑해요....). 하나 언니도 스마트폰 들고 다니는데 폴더 폰을 들고 다니는 유미-유진이, 집에 컴퓨터도 딱히 없는 것 같고 놀 수 있는 거리를 찾다가 버려진 상자들을 모으고 쌓고 만들면서 놀았던 걸 수도 있지 않을까(외삼촌이 돌봐주지만 외삼촌 없을 때는 둘 밖에 없으니). 이사를 자주 다녀서 동네에 친구도 없고 놀 상대라고는 서로 밖에 없는 두 자매는 상자를 모으고 쌓고 이으면서 외로움도 불안도 같이 눌러담아 놓았을지도 모른다.
어딘지도 모를 해변가에서 종이집을 밟아서 부숴버린다. 생각보다 부피도 크고 무서워서 여정 내내 걸리적거렸던 데다가 부모님에게 보여주지도 못했다. 그 안에 담아놓았던 걱정도 힘듦도 같이 깨졌을까.
*만들어낸다는 행위에 대해
요리는 자연 상태의 재료들을 다듬고 혼합하고 물리적·화학적 변화를 가해서 섭취 가능한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유미와 유진이는 쓸모없어진 상자들을 모아서 꾸미고 색을 칠하고 잇고 쌓고 붙여서 상자의 원래 용도와는 상관없는 '집'이라는 형태로 만들어낸다. 아이들은 요리와 만들기를 통해 창조와 변형을 경험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창조하고 변형할 수 있는 것은 그 정도이다. 아이들이 정말 만들어내고 싶은 것, 정말 바꾸고 싶은 것은 만들어내지 못한다. 스스로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이나 이론이 아직 없어서일 것이다.
아이들은 자신들에게 닥친 상황이 무엇인지, 자신이 목격한 현상이 무슨 의미인지 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한 대처에서는 어쩔 수 없이 어설프거나 서투르다. 하지만 나름 적극적이다. 사춘기에 들어선 오빠 찬이는 이 상황을 자신의 힘으로 바꿀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리고 무시하고 견디는 것을 택했지만, 하나는 어떻게든 이 상황을 바꿔보려고 여러가지를 시도한다. 자신의 집에서도, 유미-유진이의 집에서도.
기실 그런 노력들이 현실에 미치는 영향력은 미미하다. 없는 거나 마찬가지지 뭐. 현실은 전혀 변하지 않았고 유미와 유진이는 새로운 상자에 새로운 고민들을 넣어놓을 것이다. 하나는 여전히 가족들이 먹어줄 것을 기대하면서 요리를 할 것이다. 물론 구성원이 조금 바뀌겠지만. 하지만 그들의 세계는 조금은 바뀌었다. 유미와 유진이에게는 '우리 언니'가 생겼고, 하나는 '진짜 가족 여행'을 준비한다. 자신들을 둘러싼 현실에서는 창조도 변형도 하지 못했지만, 그들 자신의 세계에서는 창조와 변형이 일어났다.
*플롯
[1 위기가 존재하는 현실]-[2 현실을 바꿔보려는 노력]-[3 노력의 실패 혹은 무산]-[4 주인공 내면의 변화]
임의로 [1]-[2]-[3]-[4]로 번호를 부여했을 때 이 순서를 가지고 영화를 무 자르듯 자르기는 조금 어렵다. 각 요소들이 영화 중간중간에 여러 가지 묘사를 통해 소개되고 드러나면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예를 들어 하나네 집은 부모님이 곧 이혼할 것처럼 늘 싸우고[1] 하나는 가족 여행이라는 해결책을 제시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2]. 그러던 와중 유미-유진이를 만나게 되고 유미네 부모님이 멀리 일하러 가신 것과 이사를 자주다녔다는 것을 알게 된다[1]. 물론 큰 흐름은 존재한다. 일단 주인공이 원톱이 아니다보니 유미-유진 자매가 영화가 시작된 뒤 좀 더 있다가 등장하고, 하나와 친해지면서 이런 일이 있다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되는 식이다.
[1]-[2]-[3]이 계속 교차적으로 등장하면서 새로운 위기가 닥치고 아이들은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하지만 그것이 현실에 미치는 영향은 정말이지 미미하다. 과연 주인공들의 최종목표-부모님이 이혼하지 않는 것과 이사 가지 않는 것-이 이루어질 수 있을지 관객들의 궁금증은 점점 더해진다. '유미-유진이의 부모님을 찾아간다' 는 방법도 결국 실패하고 주인공들은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물론 현실은 여전히 그대로이지만, 유미와 유진이에게는 하나언니 라는 '동네언니' 가 생겼고 하나는 담담히 식사를 차리고 '진짜 가족여행' 을 준비한다.
*캐릭터
이하나(열 두 살, 초등학교 5학년) | 주변을 돌아보고 배려할 줄 안다. 출근 준비하는 엄마를 대신해 아침을 차리기도 하고, 누가 봐도 길을 잃은 것 같은 유진이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집을 찾아준다. 방학식 날 선행상을 받는다. 물론 선행상이라는 상의 의미나 권위가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감독님도 '하나가 받을 만한 상' 이 뭘까 생각하다가 선행상을 주기로 했다고 하니까. 그렇다고 선행상을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에게 주지는 않을 테고. 윤가은 감독님이 출연하신 팟캐스트를 여러편 들어봤는데 '실제로 봉사나 착한 일을 한 친구에게 주는 상이라기 보단 말썽 부리지 않고 말 잘 듣는, 트러블을 일으키지 않는 아이에게 주는 상' 이라는 이야기도 나왔었다. 하나는 적어도 말을 안 듣거나 트러블을 일으키는 아이는 아니다. 엄마 아빠가 아침부터 서로 죽일듯이 싸우느라 정신 없는 와중에 언제 만들었는지 아침 밥을 차려놓고 가족들에게 밥 먹으라고 이야기하는 하나는 일견 너무 일찍 애어른이 되어버린 것 같기도 하다. (엄마는 그런 하나에게 '니가 아침밥을 왜 만드냐' 며 도리어 역정을 낸다. 대부분의 가정에서 아이가 하지 않는 일을 아침부터 하는 딸에 대한 미안함을 츤데레스럽게 표현한 게 아닌가 싶다. 나도 '아이들은 아이다울 때가 제일 안정적이고 보기 좋다' 고 늘 생각하지만 하나가 이렇게 애어른이 되어버린 것은 어른들 책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미안해하는 것조차도 의미가 없는 것 같다.)
하나는 부모님이 헤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사실 가정이 깨어지는 것은 누구라도 원하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아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봐온 가정은 부모님과 오빠와 나 네 사람이 완전체인데. 그런 거 있다, 내 손으로 만든 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내가 만들지 않은 어떤 것에 내가 편입되었을 때는 그것을 깨는 것이 쉽지 않다. 처음부터 그랬으니까. 부모님은 자신들의 의지로 만들어낸 결합을 다시 해체하려고 한다. 만날 수도 있고 헤어질 수도 있지. 하지만 하나에게 그것이 쉽게 받아들여질 리는 없다. 늘 봐오던 게 집에서 같이 살고 같은 방을 쓰는 부모님이었으니까. (그리고 이건 그냥 내 지론이지만 아이들은 생각 외로 사랑이 넘친다. 관심을 받고 사랑을 받고 싶어하는 만큼 또 사랑을 준다. 나는 가정의 해체를 막으려는 하나의 의지가 대부분의 아이들에게서 볼 수 있는 넘치는 사랑의 발로라고 보고 있다. 이건 진짜 그냥 내 생각...)
나는 이미 30대이고 웬만한 일들은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있을 수 있고 저런 일도 생길 수 있는 거지,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라고 넘기는 스킬도 생겼지만, 하나에게는 지금의 이 상황이 인생 최대의 위기이고 어떻게든 최악의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 하나는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내고 그것을 시도해 본다. 비록 '순진한 발상' 일 망정 하나는 위기 앞에서 피하지 않고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애쓴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건 이렇게 노력하다 보면 어떻게든 될 거라는 믿음 때문이다. 어른들은 나의 노력으로 변화시킬 수 없는 것과 내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을 구분한다. 일에 들이는 노력을 아끼기 위해서다. 하지만 하나는 그런 것을 따지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한다. 어른들이 하는 일이 '계산적'이라면, 하나의 선택은 전혀 계산적이지 못하다. 아직 계산을 못해서인지, 굳이 계산하려하지 않기 때문인지는 정확히 모른다. 물론 그 나이는 전자일 가능성이 높지만 영화 속에서 묘사되는 나연이는 왠지 후자일 것 같다는 느낌을 준다.
하나의 대사 중에 "뭐든 하다보면 되지 않을까?" 라는 대사가 있다. 영화 내용으로 볼 때는 얼핏 참 실효성이 없는 문장 같지만, 하나는 저 한 마디를 붙들고 현실을 바꿔보려는 노력을 그치지 않는다. 사실 다 실패로 돌아가기는 했지만, 그 실패들을 겪으면서 하나가 조금씩 바뀌게 된다. 하나도 오빠처럼 내 힘으로 바꿀 수 있는 것과 내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는 자신만의 기준을 갖게 될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해변가에 다녀온 후 그것에 조금 다가갔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그러면서도 '뭐든 하다보면 될 거야' 라는 문장은 놓치지 않은 것 같았다. 앞으로도 그러기를 바란다. 내 힘으로 바꿀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그 문장이 가진 힘이 한 번 더 발휘될 테니까.
오유미(열 살, 초등학교 3학년) | 어린 나이이지만 계속 바뀌는 환경에, 부모님도 집에 거의 안 계신 상황에서 어린 동생을 데리고 있느라 의도치 않게 똑순이가 되었다.
이사를 자주 다녀야 하는 현실이 싫다. 10살 인생의 기억이 데이터베이스가 얼마나 많겠냐만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을 그 몇년 사이에도 이사를 6~7번은 다녔다고 기억을 하고 있으니. 한 동네에서 1년은 살았겠나 싶다. 조금 적응할라치면 금세 짐을 싸서 이동해야 하니 단골 가게나 동네친구가 딱히 있을 리도 없고 늘 동생과 둘이서만 논다. 외삼촌이 돌봐주시긴 하지만 언제나 집에 계신 건 아니다.
'우리 집'도 뻑하면 바뀌는데 '우리 동네'가 있을 리 만무한 유미에게 '동네 언니' 하나가 나타난 거다. 하나언니는 유진이 집도 찾아주고 유진이가 체했을 때 손도 따주고 맛있는 것도 만들어주고 세입자들이 들이닥칠 때 도와주기도 한다. 하지만 유미가 하나에게 가장 크게 동질감을 느끼는 부분은 "우리 집은 왜 이럴까...?" 라는 질문인 듯싶다. 이사를 너무 자주 다니는 우리 집이 싫은 유미는 부모님이 곧 이혼이라도 할 것 같아서 불안해 하는 하나의 처지에 이입하면서 연대감을 다진 것 같다. 같이 간 분식집에서 하나가 가족 여행을 가게 되었다고 말할 때 시무룩해하면서 유진이를 데리고 나간다. 우리 집은 언제 팔릴 지 모르는데 하나언니네 집은 뭔가 잘 되어가는구나, 라는 생각이 철벽을 치게 한 건 아닐까. 보리 해변을 찾아가는 길에서 갈등은 고조된다. 가족들에게서 걸려오는 전화를 애써 무시하는 하나에게 유미는 가족들이 전화하지 않냐며 물어보고, 하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무시로 일관하다가 결국은 폭발해서 '남의 일에 왜 상관이냐' 고 화를 낸다. 유미는 '언니가 왜 남이냐' 고 되묻는다. 유미에게 하나는 이미 남의 언니가 아닌 거다. 어느 샌가 '우리 언니'가 되어 있었다. 유미로서는 우리 언니에게 왜 자꾸 전화가 걸려오는 건지, 언니 집에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던 거겠지(유미에게 치부를 들키기 싫었던 하나는 오해하고 화를 낸 것...ㅠㅠ).
오유진(일곱 살) | 유진이의 동생이자 영화에서는 지속적으로 돌봄을 받는 입장이다. 동네 마트에서 언니 손 안 잡고 시식코너 앞에 붙박이로 있다가 결국은 길 잃어버리고 하나의 도움을 받는다. 배가 고프다고 집에 있던 편의점 도시락을 허겁지겁 먹다가 체해서 앓아 눕고 하나 언니가 손을 따준다. 방학인데다가 새로 이사온 동네라 어디 갈 만한 데도 없고 외출할 때면 늘 언니와 함께 다닌다.
언니들과 함께 만든 종이상자집을 부모님에게 보여줘야 한다며 굳이 가지고 나왔는데 정작 들고 다니는 건 언니들이 한다. 생각보다 부피가 커서 유진이가 못 듦... 어딘지 모를 해변가에 도착한 언니들이 언쟁을 벌이다가 급기야는 울기 시작하고 언니들이 울자 유진이도 같이 운다. 눈물이란 게 전염성이 강한 것도 있고 유진이도 어린 몸으로 긴 여정을 따라오느라 힘들었겠지 싶다.
이찬(열 다섯 살, 중학교 2학년) | 하나의 오빠. 말 그대로 중2병 사춘기. 부모님이 싸우던 말던 딱히 관심 없다. 찬이의 관심사는 오로지 여자친구 보라(<우리들>의 그 보라가 맞다). 물론 앞서 언급한 것처럼 찬이가 가족의 현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다만 찬이는 어른들의 사정을 자신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알 만큼 나이를 먹었고 그래서 굳이 개입하거나 바꿔보려고 하지 않는다. 어쩌면 나름대로 현실을 견디기 위한 방법으로 무관심을 선택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도 한다(찬아 임마 니도 아직 어린데 임마...ㅠㅠㅠ).
나중에 하나에게 약점 잡혀서-보라랑 데이트하는 장면 들킴-졸지에 하나의 아바타가 되어 방학숙제도 해야 하니 가족들끼리 같이 여행가면 좋겠다고 말하는 어설픈 연기도 한다. 물론 성사되지는 않았지만.
하나의 부모님 | 아빠는 저녁에 술 취해서 올 때가 많고(그래도 폭력은 행사하지 않는다 나름 좋은 아빠...) 엄마는 일 때문에 바빠서 야근은 물론이고 주말에도 출근할 때가 많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떠난 가족여행을 계기로 사이가 좀 좋아지는 듯했지만 그것도 몇 년 지나니 약발이 다 떨어졌는지 요새는 틈만 나면 죽일 듯이 싸운다(이건 아마도 전쟁같은 사...). 그리고 끝내는 이혼으로 결론을 낸다. 그걸 하나가 들을 거라고는 1도 생각하지 못한 채.
집주인 아줌마 | 유미-유진 자매가 사는 낡아빠진 연립주택의 건물주. 얼핏 보면 그냥 잔소리 잘하는 동네 아줌마 같아 보인다. 유미-유진이의 집을 팔 궁리만 하는, 잔잔하고 소소한 감성으로 꽉 찬 이 영화의 거의 유일한 빌런 역할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