닐 사이먼 '치과의사' 각색
<치 과 의 사>
원작 닐 사이먼(굿닥터 중 일부)
각색 정현수
조명 인. 치과 치료실. 가운데 의자 하나. 테이블에는 망치며 집게, 드릴 등 이곳이 치과인지 대장간인지 모를 정도로 험상궂은 도구들이 늘려있다. 목사인 명도천 등장. 몸집은 왜소하지만, 얼굴에 카리스마가 배었고 딱 봐도 거만하다. 입은 옷은 다림질이 잘 된 게 빈틈없는 사람으로 보인다. 성경책을 옆구리에 붙여 들고 있는 품새가 영락없는 목사다. 하지만 심한 치통 때문에 평화로운 얼굴만은 아니다. 아무도 보지 않은 상황이 되면 오만상을 찌푸리며 고통스러워한다. 인기척이 나자 금세 근엄한 자세가 된다.
치과 조수인 나선영이 섹시한 표정으로 명도천을 맞는다.
나선영 어머나, 오랜만에 오셨네요, 명도천 목사님.
명도천 아, 선영 씨 오랜만이야. (목소리 낮춰) 나선영 씬, 여전히 섹시해.
나선영이 성경책과 옷을 받아서 벽에 걸고 의자에 앉으라고 손짓한다. 나선영이 테이블 위에 있던 <이빨>이라는 두꺼운 책자 위에 성경책을 얹어 들고 무대 밖으로 나가자 비로소 테이블 위에 있는 망치며 집게, 전동 드릴 등을 보고 안색이 어두워진다.
명도천 (통증이 다시 시작했다) 오~ 주여! (고통을 견디기 어려워 의자를 잡고 돌기도 하고 몸부림을 친다)
나선영 (들어오며) 목사님, 많이 아프세요?
명도천 (근엄한 자세로 돌변) 믿음이 강한 사람에게는 이 정도 통증은 고통도 아니지. 하하하. (갑자기 치통이 심해진다) 아, 아~. (체면이고 뭐고 에이 모르겠다) 도저히, 아파서 참을 수가 없어. 참을 수 없는 정도가 아니라 이러다 죽을 것 같아.
나선영 정확히 어디가 그렇게 아프신가요?
명도천 어디라니? 죄다 쑤신다구! 이빨만 아픈 게 아니라, 내 입 전체가 다 무간지옥이야.
나선영 무간지옥? 멋진 표현이네요. (험상궂은 도천의 표정을 읽고는)아, 죄송해요. 언제부터 그렇게 아프기 시작했어요, 목사님?
명도천 한 10년은 된 거 같아!
나선영 네? 10년이라구요?
명도천 아니, 어제 아침부터인데 10년은 된 거 같다고. 내가 무슨 큰 죄를 지었나 봐. 그래서 하느님이 날 벌하시느라고 온갖 아픔을 다 내리신 걸 거야! 의사 선생님은 어디 계신가? 빨리 좀 불러줘.
나선영 아, 선생님께서는 세미나가 있어 출타 중이신 데요. 그동안에는 환자의 치료를 포함한 모든 일을 이.. 젊고 예쁘고 섹시하고 유능한 조수인 제게 일임하셨답니다.
명도천 하지만 자넨 의사가 아니잖아!
나선영 아, 뭐 면허증만 없다뿐이지, 모든 면에서 완벽해요. (애교를 부리며) 내일의 의사잖아요!
명도천 그렇다면 나도 내일의 환자가 돼야겠네, 수고! (돌아선다, 그러나 바로 신음)
나선영 (못 가게 막고) 아니, 목사님, 절 못 믿으시겠다는 건 아니죠? 전 의사시험이라는 형식만을 아직 치르지 않았을 뿐이지, 충분한 실력이 있다는 건 잘 아시잖아요. 제가 여기서 경력이 얼만데... 면허만 아직 안 땄을 뿐이지, 전요! 웬만한 의사보다도 더 잘할 자신 있어요. (애교를 섞어) 제발, 목사님. 제게 꼭 한 번만 기회를 주세요! (팔을 끌며) 이 의자에 앉아주세용!
명도천 (의자로 간다) 오, 주여, 저를 보살펴주소서! (앉는다. 치아뿐만 아니라 온몸이 아픈 듯 여기저기 손을 대며 신음 소리를 낸다) 아야, 아야, 아야야야!
나선영 그 정도 통증이면 내일까지 버티기도 어려워요. 저한테 잘 맡기신 거예요. 잘 봐드릴 게요. 자, 아~ 하세요.
명도천 (몇 번이나 입을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하다가 어쩔 수 없이) 아~.
나선영 (입안을 이리저리 살피더니) 신경이 곪은 게 틀림없습니다. 그거야 빼버리면 바로 안 아프구요!
명도천 뭐? 내 신경을 빼버린다구?
나선영 아뇨, 신경이 아니라, 신경에 연결된 이빨 말입니다! 그거, 아주 간단한 거예요! (테이블 위에 있던 전동 드릴과 정을 집어든다)
명도천 악! 왜?! 공업용 드릴을? 돌 깰 때 쓰는 정은 또 뭐고? 이거 치과 치료 도구가 맞긴 해?
나선영 그럼요. 이것들은 여느 치과에서나 쓰는 일반적인 도구잖아요. 치석제거기, 그리고 이 작은 건 핸드드릴!
명도천 뭐라구? 선영 씨, 어떻게 된 거 아냐? 이걸 내 입에 넣었다간 바로 입이 찢어질 것 같은데.
나선영 아무래도 목사님께서 지금 너무 두려운 나머지 이 작은 도구들이 크게 느껴지는 것 같네요. 눈을 딱 감고 마음 편하게 가지세요.
명도천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깜빡인다) 이게, 내 눈에 보이는 대로 큼지막한 게 아니라 아주 작은 것들이란 말이지?
나선영 물론입니다, 목사님.
명도천 (억지웃음) 아하하...!
나선영 자, 어디 한번 볼까요? 아~! (정과 드릴을 도천의 입으로 넣을 기세)
명도천 (손을 쳐들어 막는다) 앗, 잠깐! 제발, 자네한테 빌고, 하늘에 계신 하느님께 빌테니, 제발.. 살살 좀 해줘. 아프지 않게, 응?
나선영 목사님, 우리는 지금 진보된 과학의 시대에 살고 있어요. 발달된 기술 덕분에, 아픔이란 건 생각할 수도 없게 된 거죠. 아무튼, 살살해 달라면야 뭐 살살해드리겠습니다. 자, 준비되셨죠? (도천 끄덕인다) 네, 좋아요. 자, 그럼 다시 입을 벌리세요! (도천, 입을 꼭 다문다) 어서 입을 벌리시라니까요! (도천은 의자 팔걸이를 꼭 잡은 채 입을 열지 않는다) 목사님, 제가 아무리 경험이 없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입은 벌려야 치료를 하죠. 이빨을 빼려면 우선 입을 벌려야 한다는 거 아실 테죠? 설마 입을 다문 채로 이빨을 뽑으라시는 건 아니겠죠? 자, 어서 아~! (도천 입을 벌린다. 그러나 입술만 벌리고 이는 앙다물고 있다) 입술을 벌리란 게 아니라, 입을 벌리란 말예요. 칫솔로 그냥 이만 닦아드려요?
명도천 살살 한다고 정말 약속할 수 있겠지?
나선영 그 약속은 벌써 했잖아요.
명도천 난, 약속하고도 안 지키는 사람을 너무 많이 봤거든.
나선영 알았어요. 걱정 마세요. (정과 드릴을 테이블에 놓는다) 지금은 아무것도 안 할게요. 그저 어디가 어떤지, 또 어디를 어떻게 해야 할 건지만 볼게요, 자, 어서 입을 벌리세요! 아~! (도천, 입 벌린다) 좋습니다. 자, 어디 봅시다! (선영, 거울을 들고 들여다본다. 도천은 고통으로 신음한다) 아하. 바로 너구나! 요놈, 생긴 것두 아주 흉측하네, 니가 바로 목사님을 못살게 군 그 못된 놈이구나, 그렇지?
명도천 아니 왜 내 이빨이랑 얘길 하나? 그놈하구 사귈 새가 어디 있어? 빨리 뽑아!
나선영 서두르지 마시고 가만 계세요, 지금 조사 중이니까요! 아... 이거 이빨 가운데에 큰 구덩이가 생긴 게, 미사일 공격이라도 받은 것 같은데요. (갑자기 코를 막는다) 흡!
명도천 왜, 왜 그래?
나선영 아녜요. 냄새가 너무 끔찍해서요! 하지만 뭐 직업인의 긍지를 갖고, 그런 개인적인 감정은 참아야죠. 자, 그럼 시작해 볼게요?
명도천 살살!
나선영 아, 걱정마시라니까요! 뭐... 목사님 어머님이 하시는 것처럼 살살 해 드릴게요!
명도천 안돼! 우리 엄만, 날 미워했어, 훨씬 더 살살!
나선영 네, 네, 알겠습니다요. (거울을 놓고) 자, 우선 신경이 나와 있는지를 좀 보겠는데요, 제가 지금부터 아주 살살 불어보겠습니다. 괜찮겠죠? 자. (한쪽으로 비켜서 손바닥을 불어 테스트를 한다) 자, 붑니다! (입을 모아, 살짝 도천의 입속을 분다. 그 순간 피를 짜내는 것 같은 비명이 들린다) 네, 역시 신경이 나와 있네요!
명도천 (울며) 그게 진보된 과학이야? 엉? 겨우 이빨을 불어보는 게 발달된 기술이냐구?
나선영 (기구가 있는 테이블로 간다 ) 네, 사실은 아직도 확실한 결론에 이르지를 못해서요. 의사의 입김 온도와 부는 세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거든요, 가만있자... 아, 여기 있군! (집게를 집어든다)
명도천 그걸로 어쩌려는 거야?
나선영 그 썩은 이빨을 빼야죠, 뭐 침 뱉는 거 만큼 빨리 끝날 테니, 걱정마세요.
명도천 (십자가를 긋다가 아차하고 양손을 깍지끼고) 오! 주여, 하느님 아부지!
나선영 사실 치과의사란 게 별 거 아네요. 이 튼튼한 팔목만 있으면 되는 거니까요!
명도천 뭐 별로 튼튼해 보이지는 않는데...
나선영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달라요. 걱정 마시구요. 자, 입 벌리세요!
명도천 그래. 내, 선영 씨를 위해 기도하지. (노래하듯) 하느님, 이 젊고 예쁘고 섹시하고 유능한 의사의 정신을 밝혀주시고, 힘과 민첩한 동작을 할 수 있게 해 주시고, 특히 가녀린 팔목 힘이 넘치게 해주시옵소서.
나선영 (곡조를 따라) 아아멘!
명도천 (작은 소리로) 아아멘!
나선영 (큰소리로) 더 크게 아~멘!
명도천 (따라서) 아~
나선영 (이때다 싶어 입을 벌린 순간, 벌린 입을 단단히 쥐고) 이건 쉽게 빠질 거예요. 사실 어떤 건 아주, 애를 먹이는 수가 있긴 해요. 뿌리가 깊은 건 진짜 힘들어요. 목사님, 그러니까 제발 뿌리가 얕도록 기도하세요! 자, 그럼 시작합니다! (집게를 막 입속에 넣으려는데, 도천이 선영의 손목을 잡는다) 아니, 왜 이러세요? 자, 이거 놓으세요, 손을 잡으면 제가 어떻게 이를 뽑아요? 자, 놓으세요, 놔요! (도천이 손을 놓는다. 선영이 다시 넣으려는데, 다시 손을 잡는다) 하! 자꾸 이러시면 안 된다니까 그러시네. 정 이러면 이 집게로 손가락을 먼저 뽑겠어요! (그래도 안 놓자, 집게로 손가락을 집어 잡아당긴다. 도천은 아파서 손을 푼다) 자, 그저 가만 계세요! (도천의 벌린 입에, 선영은 집게를 넣는다) 자, 가만히 움직이면 안 돼요. 아 좀! 가만. 가만 계시라니까요. 이 집게로 이놈의 이빨 밑뿌리까지 꽉 잡지 않았다가는 위쪽 이가 부러지게 되고, 그러면 정말이지 골치 아프게 돼요!
명도천 오오.. 아.. 윽! (입을 다문다)
나선영 (강제로 다시 입을 벌리며) 자, 제발 제가 그 이빨 밑뿌리까지 잡을 수 있게 가만히 좀 계세요. 그리고 제발이지 목사님 이러시면 안 돼요, 자, 움직이지 마시고, 제가 셋을 세면, 하나, 둘, 셋! (선영이 잡아당기자 이는 빠지지 않고 도천이 의자에서 딸려 일어난다. 선영은 계속 잡아당기고, 도천은 딸려와 의자에서 바닥으로, 다시 바닥에서 일어나 방안을 이리저리 끌려다닌다. 그러다 결국은 이를 잡아빼고, 도천은 결국 비명을 지르며 넘어진다)
명도천 으아~!
나선영 (반대쪽으로 넘어지며, 신나서) 와! 뽑았다! 뽑았어! 드디어 내 생애 최초의 이빨을 뽑았구나! 만세!
명도천 그래, 아주 잘 뽑았다. 니가 죽거든 지옥으로 끌려가서 똑같은 꼴을 당하게 해달라고 기도할 거야!
나선영 (집게 끝을 보며) 아이쿠! 이런…. 큰일 났네. 내 이럴 줄 알았지. 그러게 제가, 움직이지 말고 계시란 얘길 했잖아요. 이빨이 윗부분만 부러졌으니…. 아직도 뿌리가 남아 있다구요. 하, 이거 참 큰일 났네!
명도천 뭐라구? 그렇게 야단법석을 떨어놓고는 이빨을 뽑지 못했다구? 아이구 이 망할… 으으흠. 이이고 이빨이야! 천벌을 받아도 모자란 악마 같은 놈…? 어, 놈은 아니구…. 너한테 당한 거 생각하면, 지금까지 이빨 아픈 거는 차라리 행복했다! 아이고 치통 두통이야.
나선영 돌대가리 농사꾼 같은 소리 마세요!
명도천 (깜짝) 뭐라구? 어찌 나한테 그런 말을 할 수 있지?
나선영 사실이지, 목사님 이빨보다도 더 단단한 건 목사님 머리통이라구요! (일어나서, 도천 쪽으로 다가간다) 자, 말로 할 때 다시 의자에 앉으시죠, 아직 안 끝난 거니까요.
명도천 (일어나며 뒤로 피한다) 가까이 오지 말고 저리 가! 이 악마. 다시 한번 니 손이 내 입에 들어오면, 내가 이번 주 들어 처음 씹어보는 음식이 될 거다! (도천, 문을 향해 달려간다. 그러나 선영이 재빨리 문을 가로막는다)
나선영 그 이빨, 마저 다 뽑기 전에는 여기서 못 나갈 줄 아세요, 이건 직업적인 체면에 관계되는 일이니까요!(씩씩거린다. 도천은 선영을 피해 도망간다. 선영이 문에서 비켜서자 다시 문으로 가다가는 선영에게 가로막히면 피하곤 한다. 다시 도망가고 따라가고 하다가는 지쳐서, 결국 둘 다 쓰러진다)
명도천 졌다! 졌어! 내가 졌다구!
나선영 이젠... 저도, 지쳐서 도저히 못 하겠습니다!
명도천 그럼 되나? 힘을 내야지. 자, 우리 함께 기적이 내리도록 기도하자! (도천은 무릎으로 기어서 선영의 옆에까지 가서 그를 일으킨다. 둘 다 손을 모으고 하늘을 향해 기도한다) 하늘에 계신 하느님 아버지시여~.
나선영 오, 하느님.
명도천 제발 이 훌륭한 의사에게,
나선영 제발 이 불쌍한 환자에게,
명도천 튼튼한 팔목 힘을 주시고,
나선영 입을 크게 벌리도록 해 주시고, (조명, 사이키로 변한다)
명도천 우물쭈물하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나선영 저를 깨물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명도천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을 내려주소서.
나선영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을 내려주소서.
명도천 아, 아부지.
나선영 그 아부지에 아부지시여!
명도천 주여!
나선영 들어갔어욧!
명도천 아악~!
조명 아웃. 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