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점과 묘사
이 영화는 모든 장면을 철저히 아이들의 관점으로 보여준다. 윤가은 감독은 인터뷰에서 '조금이라도 위에서 찍으면 아이들이 대상화되어 보였다' 며 모든 앵글을 아이들 눈높이로 맞춰 찍은 이유를 설명한다. 사실 디테일을 파고 들어가면 여러가지 기술적인 문제들이 다시 발생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끝까지 아이들 눈높이에 아이들을 찍고 세계를 찍는다. 그 많은 씬 중에서 어른들의 얼굴을 가까이서 찍은 장면이 없다. 어른들 눈높이에서 어른들 얼굴을 찍는 장면은 정말 1도 없다. 관객들은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같이 현실을 보고 느끼게 된다. 어른들만 나오는 씬도 없다. 관객들은 또 어쩔 수 없이 언제나 아이들의 존재하는 화면 속에서 아이들의 삶을 보게 된다.
영화를 보면서 내게는 '세계관의 충돌'(있어 보이려 노력한 것일 뿐 사실 별거 아닌 용어입니다 그냥 넘어가 주세요)이 일어났는데, 힘들거나 충격적이라기 보다는 재미있었다. 말하자면 '어른인 내가 볼 때는 별 것 아닌 것들이 아이들에게는 대단하게 느껴지는 매직' 이랄까. 예를 들어보면 아이들이 보리해변을 찾아가는 길에 시골에 많이 있는 굴다리를 지나가는 장면이 나온다. 한쪽에 경운기가 세워져 있고 술 많이 마신 듯한 아저씨가 아무렇게나 누워서 자고 있다. 잠과 술에 취한 아저씨가 잠결에 경운기 위에서 용트림을 해대자 '텅텅' 하고 쇠 부딪히는 소리가 난다. 굴다리 밑이니 소리가 공명이 되어서 더욱 커지겠지? 그 소리에 놀란 아이들은 새된 소리로 비명을 지르며 굴다리를 빠져나가려고 뛰다가 휴대폰을 떨어뜨리기도 한다(그러고 핸드폰은 영영 잃어버렸다는 후기가...). 내가 시골길을 가다가 그런 장면을 봤다면 "아이구 아저씨 이 대낮에 술 먹고 뭐하시나..." 하고 한심한 듯 쳐다보며 짐이 무겁다고 투덜대면서 지나갔을 텐데, 아이들에게는 그것이 주는 훨씬 크고 선명하게 다가왔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이것은 세계관의 충돌을 보여주는 작은, 그리고 가시적인 예시 정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속에서 아이들은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애쓰지만 어른들의 사정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겠구나 싶은 일들이 계속 일어난다. 하나가 아무리 애를 써도 성사되지 않던 가족 여행이 부모님에 의해 너무나 쉽게 결정되어 버린다든지, 아이들이 창의력을 최대한 발휘해서 예비 세입자들이 들이닥칠 때마다 쫓아냈는데도 집을 마음에 들어하는 세입자가 나타나고 집주인 아줌마는 집을 팔아버리려고 한다든지. 내가 그것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면 '저런다고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을 텐데 아무튼 아이들은 참 열심이구나' 하며 조금 안타까워 했으려나. 그런 것 마저도 귀여워 보일 만큼 내가 나이를 먹은 건지, 아니면 스크린이라는 매체가 거리감을 형성해서인지는 잘 모르겠다.
*현실적이면서도 아름다운 미장센
아이들이 살고 있는 도시 변두리 주택가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잘 담아냈다고 느꼈다. 현실적인 풍경인데도 영화 내내 참 예쁘게 나오는데, 배경이나 세트를 예쁜 걸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빛과 색을 이용해 영상미를 극대화하였다. 극 중의 배경이 여름방학인데 한여름의 정취를 한껏 느낄 수 있는 감각적인 샷들이 계속 이어진다. 특히 유미네 옥탑 평상에 셋이서 둘러 앉아 종이상자로 집을 만들 때 뒤로 비치는 노을이 그렇게 예쁘다.
*감독님의 자비
-캠핑 도구 버려두고 급하게 병원으로 가는 신혼부부(개연성 접어두고 아이들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신...)
-영화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우리들>의 주인공 친구들(아직 내가 <우리들> 안 봐서...ㅋㅋㅋ <우리들>의 아이들이 잘 지내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감독님의 서윗함....)
이 영화는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애쓰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런 영화들의 특징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각자가 느끼고 생각하게 만든다는 거다. 개인적으로는 어린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내가 느끼는 인식의 차이라든지, 어른이 된 채로 아이들을 보는 시선이 얼마나 편협했는지 같은 것들을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영화 속에서 하나와 유미와 유진이는 어른이나 조금 나이 있는 언니·오빠의 도움이나 개입 없이 그들끼리 고민하고 행동하고 싸우고 울고 웃고 이야기하고 노력하고 시도한다. 많은 지점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인데 그들 앞에 놓은 상황을 직접 해석하고 대응하면서 그들의 내면을 다져간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어리다. 그렇기에 어른들은 그들을 배려해야 한다.
아이들은 어리다. 그렇지만 어른들은 그들을 배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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